자폐아동 가정지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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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2 14:00
아이는 계속 웁니다.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 통제 받지 않겠다고 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항상 어머니 애정 어린 품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 가거나 혹은 다른 생활 집단에 제약 받는 것보다는 어머니와 항상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원하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대신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가기 싫어합니다. 유치원에 갈 때쯤이면, 심하게 웁니다. 그래야만 유치원에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하게 우는 아이를 애처롭게 생각하는 어머니는 그만, 유치원 보내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렇게 까지 하면서 유치원에 보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엄마가 보호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유일한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놀이방이거나 혹은 놀이치료 기관입니다. 그곳에서는 자신을 통제하고 제야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놀면 선생님은 자신의 놀이에 참여하여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놀이방이나 놀이치료 기관을 선호하고 그 곳에서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그들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친구끼리 놀 때도 규칙이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아도 거기에는 역할과 규칙이 있습니다. 자신보다도 또래 친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성장한 아이로서는 그것은 또 하나의 제약입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자신을 통제하고 제약하지 않은 유일한 친구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자꾸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생활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공간 이외의 밖은 자신과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과 수행해야할 것”, “자신보다도 친구를 위해서 배려해야 하는 것” 그리고 “더 넒은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들을 지켜야 하는 것”들을 받아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나이가 자꾸 듭니다. 벌써 15살이지만, 자신의 생활공간과 생활 세계는 아주 좁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그 곳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다른 세상을 체험하고 싶어도 그곳은 불안한 장소이며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또래 친구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밖같세계는 아이에게 있어 불안하고 힘든 세계입니다. 아이에게 있어 세상은 이제 불안한 세계입니다.
생활지도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이해수준과 양육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부모의 생활지도 방식은 곧 자녀에 대한 이해 수준과 양육태도의 성격에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자녀를 지도할 것인가?” 이전에 “어떻게 자녀를 이해 할 것인가?”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자녀를 “도와주어야 할 아이”, “애정과 사랑을 주어야 할 아이”로 생각했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에는 자녀가 “무능력한 아이”, “불상한 아이”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녀를 인식하는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세계를 경험해야 할 존재 혹은 생활세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아동이든 혹은 장애아동은 자신 앞에 놓인 환경과 세계를 탐험하려는 지적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확장해 갑니다. 그러나 자녀가 일반아동들과 다르기 때문에 즉, 장애아동이기 때문에 그러한 능력을 같지 않다고 잘못 이해를 합니다.
아동은 자신의 타고난 생물적 능력에 의해 성장하지만, 환경은 그 능력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때로 퇴보시킬 수 있습니다. 아동이 건강한 생물학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얼마나 높은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결국 환경에 의한 것입니다. 생물학적 능력이란 단지, 뛰어다니거나, 먹는 것, 신변처리 하는 능력 등과 같은 신체기능을 활용하는 등과 같은 육체적 건강한 상태와 기능이 뿐만 아니라, 환경과 현상을 인식하고 아동의 자신의 세계를 해석하는 인지능력도 포함됩니다.
아동에게 있어서 중요한 환경은 교육을 위한 특별한 시설 및 환경 혹은 재정지원 이나 복지 등과 같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아동에게 직접적이며 결정적 영향을 주는 부모입니다. 아동은 자신의 세계를 부모를 통해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도 부모가 아동의 세계관에 기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에 부모가 자녀를 “보호해야 하는 대상”,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할 때, 그리고 자녀를 아낌없이 “애정과 사랑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인식할 때, 부모의 양육태도는 일반 아동의 부모의 양육 방식과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자녀의 이해 방식은 자녀를 “장애를 가진 아동이기 때문에”, “특수아동이기 때문에”, “일반아동들 보다 능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불쌍한 아동이기 때문에”라는 극히 부모의 주관적인 견해 때문입니다.
우리 아동들은 보호 대상자가 아니라, 교육 대상자입니다. 그리고 못하기 때문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아동이 아니라, 못하기 때문에 가르쳐 주어야 할 아동입니다. 부모로부터 일방적으로 애정과 사랑을 받는 아동이 아니라, 스스로 애정과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아동이어야 합니다. 불쌍한 아동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아동입니다. 진정 자녀를 위해서 아동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자녀 이해의 무지 때문에 아동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한국인지과학연구소
부설 자폐증클리닉 센터 상담글중에서
http://www.autismcenter.or.kr/